사무엘은 평생 두 종류의
인간을 상대했다고 보여집니다.
사울과 같은 인간과 다윗과 같은 인간입니다. 정확히는 사울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기를 쓰고 드러나지 않게 감추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쪽은 잘 하다가도 잘못이 드러나면 회개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만년에 사울은
신접한 사람에게로 가고 다윗은 성령에
감동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초대왕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하든지 기울어져 가는 사울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 증거가 성경에는 보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삼상9:19)
선지자를 처음에는 선견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무엇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도 포함되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마음의 가장 깊은 중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 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16:7)
사람은 결과를 따지겠지만
하나님은 의도를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의도된 생각이 무엇인지 살피십니다.
사람과는 달리 하나님은 외모에 신경을 쓰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사무엘도 인간의 시선으로 인재를 관찰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보는 것은 제아무리
민주적인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열심히 관찰한 결론과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마가렛 대처 수상의 발언). 사무엘이 사울왕을 끈질기게 관찰을 했습니다. 성령의 눈으로 출중한 용모를 가진 세상의 권력자를 주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불행했습니다.
연극은 끝났소! 당신 속에 진실된 중심이 없음을 알았소! 하나님은 연극배우된 우리를 무대에서 끌어 내리실 것입니다.